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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크로드 1만 2000킬로미터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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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30여 년간 기자로 살아온 이가, 그것도 정치부․경제부 기자를 지낸 이가, 어느 날 문득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도 예순두 살이라는 나이에….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는 은퇴 후인 1999년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단 1킬로미터도 빠뜨리지 않고 걸어서, 그것도 혼자서, 1만 2000킬로미터의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이 4년간의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기록한 책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나는 걷는다』이다.

 

오래 묵은 책 한 권을 우연히 헌책방(소소책방)에서 발견했다. 한국에 소개된 지가 10년을 훌쩍 넘긴, 그래서 뇌리에서도 아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던 책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무언지 모를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스쳐갔던 기억들을 더듬어서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여행자라서 여행 관련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나 미려한 문장으로 써내는 여행에세이와 과다할 정도의 정보를 쏟아내는 여행가이드북이 여행서적의 주요한 흐름인 작금의 현실에서, 이처럼 저자의 숨소리와 땀 냄새가 나는 책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수많은 여행서적 중에서 나의 머리를 온통 뒤흔든 책을 꼽으라면 겨우 몇 권에 불과할 것이다. 미려한 문장의 에세이도, 상세한 정보를 주는 가이드북도 결코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 실크로드 여행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를 간단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있다. 여행기를 쓰는 이들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문구가 아닌가 싶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여행가다. 자신을 작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기존의 여행 작가보다 더 잘 쓰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면을 채우기보다 실제 경험한 것을 요약해서 쓰려 했기 때문이다.”

 

 

-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도보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 나는 길을 떠났고, 조금 가다가 휴식을 취했다. 눈을 들어보니, 거북이 한 마리기 비탈길 위쪽에서 둥그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친구여.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와 경주하지는 않을 거야.

 

- 완벽한 고독, 이는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비밀과 경계심이 너무나 많아 일부러 거리를 두는 신들은 단체 여행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

 

- 나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 대상들은 하루에 30에서 40킬로미터, 즉 짐을 실은 낙타의 느린 걸음으로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을 걸었던 것이다.

 

-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 아랍 속담 중에서

 

- 특히 순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되곤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에 가까이에 가 있다고나 할까. (…)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걷는 것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 고독한 여행자는 원래 짐 속에 두려움을 갖고 다니는 법이니까.

 

- 지혜란 길을 따라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 돌아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른 것을 향해서 똑바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하지만 콤포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까요.”

 

- 길 끝에서 나는 현명함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 나를 덮치기 전에 헛되이 그것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기질상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도 활동적인 나는, 내가 걸어온 이 느린 길 위에서 고요와 몰입, 영혼의 평화를 찾아야만 한다.

 

-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또한 이 책의 성격에 대한 원칙도 세워놓고 있었다. 낯선 곳의 사람들과 경치와 풍습들을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소개하는 일반적인 기행문이 아닌, 오직 자신의 여정과 느낌들만을 사진 한 장 없이 꼼꼼하게 담아낼 것. 그의 여행이 달팽이의 지루한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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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도 반한 대만의 망고빙수 직접 먹어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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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도 반한 대만의 길거리음식 ‘망고빙수’ 직접 먹어 봤더니

 

대만여행을 가기 전부터 아내는 망고빙수를 외쳐댔다. 첫날에 타이베이공항에 내리자마자 망고를 찾았으며, 거리를 걷다가도 망고가 없나 주위를 살피기를 잊지 않았다. 급기야 망고빙수를 먹기 위해 여행일정을 바꾸어야 했다.


▲ 화시졔 야시장의 과일 노점


첫날에 들렀던 화시졔(화서가) 야시장에서는 망고빙수를 찾을 수 없었다. 망고, 구아바, 목과, 용각, 다래, 망고스틴, 연무, 서각, 백향 이라는 무화과 등 여러 가지 과일을 파는 노점들에서 망고를 볼 수는 있었으나 주스나 과육이 전부였다. 우리가 원했던 건 '꽃보다 할배-대만편'에 나왔던 그 망고빙수였다.


▲ 시먼띵 거리의 과일 노점


여행 이튿날, 드디어 현지가이드 초 씨의 도움으로 시먼띵(서문정) 거리를 가게 되었다. 초 씨의 말에 따르면 ‘꽃보다 할배’에서 망고빙수를 팔던 가게는 주인이 중풍이 들어 당분간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문정은 우리의 명동이나 홍대 거리쯤으로 아주 번화한 거리였다.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들과 먹거리, 길거리공연으로 거리는 북새통이었다.


▲ 시먼띵 거리의 과일 노점


시먼띵 거리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망고빙수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9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가게는 손님들로 붐볐다. 대만인들도 많이 찾았고 한국인들도 더러 있었다.


▲ 시먼띵 거리의 망고빙수 가게


주방 안은 온통 과일이다. 그중에서도 망고가 단연 눈에 띈다. 대만에선 4월부터 10월까지가 망고의 계절이라고 한다.



망고를 부지런히 손질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했다. 노란 과육에 절로 침이 고일 정도로 망고는 먹음직스러워보였다.



망고 과육을 그대로 분쇄기 통에 넣더니 갈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래 접시에 수북이 쌓이는 망고 빙수.


▲ 시먼띵 거리의 망고빙수


야, 하며 절로 감탄이 나온다. 보기만 해도 먹기 전에 침이 고일 정도다. 과육도 싱싱할 뿐더러 아이스크림과 빙수와 연유가 절묘하게 맛을 이룬다.



놀라운 일은 다음 날에 일어났다. 망고빙수를 조금 많이 주문하는 바람에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던 것. 그래서 포장을 해달라고해서 호텔로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 날 저녁에 생각이 나서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모두 다 녹은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마셔 보았더니, 아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보통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그 특유의 냄새와 밍밍함 때문에 먹을 수 없는데, 이건 싱싱한 망고를 금방 갈아서 만든 주스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 예류해양공원의 과일 가게


대만여행을 끝낸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과일이다. 예류(야류)지질공원, 타이루거(태각) 협곡에서도 대만의 과일 맛에 푹 빠져 버렸다. 틈나는 대로 과일을 맛보는 게 대만여행의 일부가 된 것이다.


▲ 예류해양공원의 과일 가게


타이루거 협곡에서는 원주민이 파는 망고주스를 맛볼 수 있었다. 망고빙수는 대만 돈으로 200원(한국 돈 8000원 정도), 망고주스는 150원(한국 돈 6000원 정도)이었다. 모든 여행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것이 그 지역을 제대로 여행하는 것 중의 하나라면, 대만에 가면 백일섭과 할배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망고빙수는 꼭 먹어볼 일이다.


▲ 타이루거 협곡 원주민이 파는 망고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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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에 또 감탄, 입이 떡 벌어지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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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에 또 감탄,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대만 여행 첫날, 충렬사에 갔다가 곧장 고궁박물원으로 갔다. 고궁박물원은 대만여행에서 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세계 4대 박물관이라는 수식이 아니더라도 고궁박물원의 유명세는 일러서 무엇 할까.

 


"천하위공天下爲公"석조 패방에 걸린 쑨원(손문)의 글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글씨에는 공산당이든, 국민당이든 모든 중국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쑨원의 원대한 기상이 서려 있는 듯했다.



천하가 한 집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걸 천명한 그의 신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예기에 나오는 이 말은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평하다는 쑨원의 신념이 되어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이듬해에 중화민국을 건립하게 된다.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언덕 높직이 앉은 고궁박물원은 얼핏 봐도 참 좋은 곳에 자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경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자금성의 한 단면을 보는 것처럼 건물은 웅장하고 위압적이기까지 했다.



 

박물원 좌우계단의 중앙에는 중화민국 81년(1992년) 8월 기일에 세웠다는 거대한 솥(주정)이 있다.


 


 

박물원 입구부터 넘치던 인파는 안으로 들어서자 북새통이었다. 다행히 안내원이 있어 질서정연하게 관람을 기다릴 수 있었다. 먼저 안내멘트가 나올 헤드폰을 빌린다.


 


 

어마어마한 수의 헤드폰이 곳곳에 걸려 있다. 매표소 안에도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역시 관람에 쓰이는 헤드폰 등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1965년에 세워진 이 고궁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유물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75만 점에 달하는 엄청난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영구 전시되는 일부 인기품을 제외하고 3~6개월마다 바뀌어 전시하고 있단다. 평생을 봐도 이곳의 유물을 다 볼 수 있을까.

 

 

박물원 안에는 사진촬영을 할 수가 없단다. 카메라를 기물처(체크룸)에 맡기고 영수증을 챙긴 후 본격 관람을 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꽃할배들이 감탄을 연발했던 육형석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다행히 잠시 기다린 후에 관람을 할 수 있었다.(아래 이미지 출처: 구글)

 

 

 

‘육형석’은 동파육을 닮은 ‘교조’라는 옥 재료라 한다. 동파육을 닮은 이 육형석은 원래의 생김새에 털구멍을 만들고 색을 입혀 더욱 실감나게 했다.

 

 

 

 

마치 배추같이 생긴 ‘취옥백채’는 옥 조각으로 청나라 말기 광서제의 서비가 혼수로 가져온 예물이란다. 배추 잎 위에 앉은 메뚜기 조각을 보면 그 섬세함에 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조감람핵주’는 높이가 1.6센티미터, 길이가 3.4센티미터의 아주 작은 배인데, 놀라운 것은 올리브 씨앗 하나로 만든 조각품이라는 것이다. 이 작은 배 안에는 모두 8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각기 그 표정이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문도 여닫을 수 있을 정도로 내부시설까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배 밑에는 소동파의 적벽가 전문 357자가 촘촘히 조각되어 있어 놀라울 뿐이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는 청나라 건륭제 때 만들어진 일종의 노리개다. 코끼리 상아를 둥글게 잘라 만든 공 모양의 이 조각품은 3대에 걸쳐 만들어졌다 한다. 신기한 건 공 속에 공이 17개나 있고, 바깥에서부터 공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 다시 공을 만드는 식으로 계속 깎았다는 것. 공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 회전이 가능하며 둥근 구멍까지 모두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박물원 로비 끝에는 각종 기념품을 파는 판매점이 있었다.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려 유물도록을 찾았으나 딱히 만족스러운 것이 없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던 중 문득 올려본 천장의 서까래가 눈길을 끌었다.

 

 

비가 내렸다. 하루에도 몇 번 바뀐다는 대만의 변덕스런 날씨. 우산이 없었지만 옷을 겨우 적실 정도로 촉촉하게 내리는 보슬비라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난 짧은 숲길을 걸었다.

 

 

국립고궁박물원은 타이베이 시 쓰린 구의 와이솽시(외쌍계)에 자리하고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전 세계 중화문물의 보고라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는 박물관이다. 1965년 11월 12일 손문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은 1925년 10월 10일 개관한 베이징 고궁박물원을 모체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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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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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 맞아? 대만 충렬사 위병 교대식

타이베이 공항에 내리자마나 제일 먼저 들은 곳은 충렬사.

렬사는 국공내전과 항일운동에서 전사한 군인과 열사의 영령을 모신 사당이란다.



입구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멀리 건물을 배경으로 군인 두 사람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던 것.



그제야 '꽃보다 할배'에서 보았던 위병 교대식 장면이 떠올랐다.

그 엄숙하고 긴장감마저 돌았던 교대식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아직 시간이 일렀는지 교대식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암만 봐도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처음 보면 누구나 마네킹으로 여길 듯... 부동자세!



일단 문을 통과하여 먼저 충렬사를 둘러보기로...



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웅장한 건물 층계를 내려오는 위병들.




절도 있는 한 걸음 한 걸음,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당을 지키던 군인들이 교체되고 정문 격인 패방으로 향한다.




충렬사의 위병 교대식은 매 시간마다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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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가면 꼭 들른다는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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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가면 꼭 들른다는 충렬사 


대만을 방문하는 단체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꼭 들른다는 충렬사.

우리로 치면 국립현충원 정도 된다고 할까.


 

대만 어디서든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


 

충렬사 좌우로 인성, 의취라고 적힌 거대한 삼문을 들어서면 베이징 자금성에서 익히 봐왔던 웅장한 건물이 멀리 보인다.


 

 

본전으로 오르는 건물 벽에는 중화민국 1년(1911) 3월 29일에 일어난 광동기의 장면이 동판에 부조되어 있다. 


 

 

웅장한 충렬사 본전, 바짝 군기가 든 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열 지어 있는 붉은 기둥과 본전 좌우로 위패들을 모신 건물이 있다.


 

대리석으로 꾸민 사당 안은 매우 엄숙하다.


 

 

이곳의 볼거리 위병 교대식. 사실 관광객들이 충렬사를 찾는 이유는 이 위병 교대식 때문이다.


 

본전 옆 위패를 모신 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찾질 않는다.


 

항일운동과 국공내전에서 숨진 이들의 유품과 위패를 찬찬히 둘러봤다.


 

회랑을 따라 건물을 돌아기니 이처럼 잘 꾸며진 공간이 나타났다.


 

 

본전을 나오면 다시 광장, 광장 좌우에는 2층탑이 있고 그 안에 두 분이 모셔져 있다.


 

오른쪽에는 육호동(1868~1895)), 왼쪽에는 사견여(1879~1900) 두 열사의 흉상이다.


 

육호동과 사견여는 둘다 청나라 말기의 인물이다.

육호동은 손문과 생사를 같이하며 부친의 유산을 팔아서 혁명을 적극적으로 돕다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사견여는 양광총독 덕수를 살해하려다 체포되어 혹형을 당한 끝에 최후를 마쳤다.


 

육호동과 사견여는 손문과 함께 혁명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20대의 젊은 나이에 희생을 다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중국 혁명에 그들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들은 짧게 살고도 오래 남는 이가 되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 충렬사를 나왔다.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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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음식의 별세상! 대만 화시졔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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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음식의 별세상! 대만 화시졔야시장

 

시장만큼 어디서든 환영받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최근에야 각광을 받고 있는 야시장이, 중화인들에게는 예전부터 환영받는 곳이었다.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야시장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말이다. 먹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쳤던 중화인들에게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정신까지 곁들여진 야시장은 맛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베이에는 유명한 야시장이 제법 많다. 북쪽으로는 쓰린 야시장, 동쪽으로는 라오허졔 야시장, 통화린장졔 야시장, 중앙에는랴오닝졔 야시장, 서쪽으로는화시졔 야시장, 닝샤 야시장 등이 있다. 그중에서쓰린 야시장은 해물 상하이 군만두, 대만식버거, 쓰린 소시지, 굴 부침 등이 유명하고, 화시졔 야시장은 진딩 고기죽, 선어면, 소주새우 등의 먹거리가 유명하단다. 라오허졔 야시장은 약선돼지갈비, 과일 비수 등이 소문나 있단다. 근래 들어 중국 대륙의 유명 요리뿐 아니라 동남아, 인도, 이태리, 멕시코 등의 다양한 음식들이 있어 가히 먹을거리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롱산쓰(용산사)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화시졔야시장이다.

 

 

조명도 화려하거니와 야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시장 오른쪽으로 조금은 으쓱해 보이는 거리가 있다. 오토바이의 천국답게 거리 좌우에는 오토바이가 줄 지어 있다.

 

 

이곳이 예전에는 유명했던 홍등가란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지만 예전에는 유흥가로 넘쳐났던 거리.

 

 

노점들을 딸 길거리 음식 구경. 역시나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다.

 

 

개중에는 친숙한 음식들도 있다.

 

 

역시 어디를 가도 튀김 종류는 인기!

 

 

꼬지 종류도 워낙 다양해서 뭐가 뭔지 모를 지경.

 

과일을 봉지나 도시락에 담아 파는 색다른 풍경.

 

 

화시졔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이 소시지. 한국인들에게도 인터넷으로 널리 알려져 대만에 오면 꼭 먹어 본다는 소시지다.

 

 

쓰린 소시지가 더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곳도 줄을 서기는 마찬가지. 그 맛에 일행 모두가 감탄... 가격은 1개당 30원 정도로 우리 돈 천 원 남짓 했던 걸로 기억된다.

 

 

노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니 점포들이 이어진다.

 

 

요즈음 대만에서 인기 있다는 밀크 버벌티. 근데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안마소가 곳곳에 있다. 대만의 발 마사지는 제법 유명하다. 가격은 대만달러로 400원(우리 돈 1만6천 원 정도)부터 어깨 등이 추가되면 비용이 올라간다.

 

 

무엇인고 한참이나 봤더니 성인용품 가게

 

 

아, 여기는 뱀탐을 파는 곳. 사진을 찍고 났더니 "촬영하지 마세요"푯말이 보인다.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싱긋 웃었더니 그냥 패스~ 예전 이곳엔 뱀탕집이 수십 군데가 넘었다고 한다. 홍등가도 자연히 번성을 했다는...

 

 

이곳에서 유명한 소주새우. 아쉽게도 맛을 보지 못했다.

 


 

길거리에서도 새우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있는 지도.


 

 

이게 뭔고 했더니,

 

 

우리로 치면 음란물(?)을 파는 곳이다.

 

 

길거리에서 야릇한 CD를 고르는 풍경이 이곳에선 낯설지 않다. 대부분남자 손님들이다. 우리에 비해 성이 개방적이다.

 

 

표정들이 너무 진지한데, 지나는 이들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족발 가게.

 

 

향료 냄새가 약간 났으나 색으로 봐선 우리네 족발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어묵을 파는 이 집은 대박이었다.

 

 

줄을 서서 먹는 풍경이 이곳에서도 연출된다.

 

 

시장 어느 곳이든 손님이 덜 붐비는 곳도 있기 마련.

 

 

군밤도 팔고,

 

 

역시 오토바이는 시장에서도 쉴 새 없이 달린다.

 

 

우리의 연잎밥과 비슷한 음식들.

 


 

점을 보는 곳도 있다.

 

 

이게 대만식 호떡인데, 나름 먹을 만했다. 야채에 계란을 넣고 전처럼 부친다. 맛은 밋밋한데 마치 우리의 전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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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집합소, 짜오를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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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집합소, ‘짜오’를 던져라!

-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타이베이 롱산쓰(룽산사, 용산사)


 

 

타이베이 MRT 롱산쓰 역에서 내리면 코 닿을 거리에 롱산쓰(용산사)가 있다. 뱀 골목으로 유명한 화시제야시장과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화려한 채색이 되어 있는 공포 양식의 긴 담장을 따라 걸으면 곧장 절 입구에 다다른다.


 

타이베이 시 도심에 있는 롱산쓰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사원이라고 한다. 청나라 때인 1738년에 중국 복건성 이주민들이 지었으나 소실되었다. 본당이 소실되었을 때도 관음보살상은 손실되지 않아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뒤인 1957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사원의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안에도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늦은 저녁인데도 사원의 바깥마당은 북새통이다.



 

건물은 온통 용 조각이다. 용마루에는 용 두 마리가 하늘을 금방이라도 오를 기세였고, 붉은 여의주가 불쑥 솟아 있다.


 


 

마당 한구석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어디를 가도 붙어 있는 경고문. 돈을 던지지 말고,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는 의미로 보인다.

 

 

롱산쓰라는 현판을 확인하고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중앙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주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왼쪽 문으로 나오는 동선이었다.


 

입장료는 별도로 없었다. 다만 향을 팔고 있었다. 대만 돈으로 10원이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지금과는 또 다른 풍경. 향불을 피우며 기도하는 이들로 절 마당이 가득 찼다. 이따금 들리는 목소리는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기도하는 이들이 보인다.

 

 

제단에는 음식물들이 올려 있다. 법당 안 불단에 음식을 올리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절에서 준비한 음식이 아니라 개인이 준비해서 음식을 공양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먼저 물건의 생김새가 독특했다. 반질반질한 반달 모양의 이것은 ‘짜오’였다. 도교에서 점괘를 볼 때 쓰는 나무 조각이다. 반달 모양의 이것을 세 번 던져 서로 다른 모양이 나와야만 바로 옆에 있는 서랍에서 점괘를 꺼내 볼 수 있다.

 

 

본전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절을 하거나 기도를 한다.



밤이 깊어가는 데도 더욱 간절하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여행자도 잠시 눈을 감았다.



한쪽에는 책들이 쌓여 있다. 몇몇 사람들은 선 채로 책들을 들여다본다.


 

향내 가득한 사원과 기도하는 이들, 책을 읽는 이들이 묘하게도 한데 잘 어우러진다.



지붕뿐만 아니라 기둥에도 용이 조각되어 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조각들이 놀랍기만 하다. 특이하게도 구리로 만든 기둥인 동주와 고동색의 승천하지 못한 용인 반룡을 볼 수 있다. 여러 마리의 용 조각들은 휘황찬란하여 생기가 넘치는 데다 화려하기 그지없다. 용 뒤에는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춤추는 모습을 새겨놓아 더욱 놀랍다.


 

본전에는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비롯해 사해용왕, 18나한 등이 있다. 관음보살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본전을 돌아 뒤로 가본다. 후전에는 많은 신들이 모셔져 있다. 이곳 롱산쓰의 후전은 별도로 여러 신들을 함께 모셔 두고 있어 신들의 집회소라 불리기도 한다. 전형적인 타이완 사찰로서 도교, 불교, 토속신, 즉 관음보살, 마조, 관우 등을 함께 모시고 있어 각 종교의 색채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그중에서도 여행자의 관심을 끈 건 ‘천상성모’라 불리는 마조. 마조는 항해의 안전을 지키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배를 이용하여 교역하는 화교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신이란다. 대만에서 마조 신앙은 유별난데, 마조는 여러 신들 가운데서도 옥황상제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심지어 일본까지 마조의 사당이 있을 정도이다. 화교의 해외 진출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낮에도 물론이거니와 저녁 퇴근길에 대만인들은 롱산쓰에서 간절한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건물을 지을 때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롱산쓰는 불교, 도교, 민간신앙이 어우러진 독특한 사원이다. 몸이 아픈 이들은 화타신선에게, 시험을 앞둔 이들은 문창제군에게, 바다의 여신 마조에게, 장사의 신 관우에게, 제각기 기도를 한다.

 


 

화려한 불빛과 불상들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방의 낯섦과 신앙의 경외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




※ 대만인들이 그러하듯, 바다의 여신 ‘마조’에게 간절히 빕니다. 아직 세월호에 남은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 어린 학생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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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온천탕을 혼자 독차지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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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온천탕을 혼자 독차지한 사연

 

온천 하면 자연 일본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꽃보다 할배'에서 대만 온천을 보고 대만 여행에서 온천을 꼭 갔으면 했지요. 사실 대만의 온천은 꽤나 유명하답니다.

 

 

그중에서 양밍산(양명산) 온천으로 향했습니다. 양밍산은 원래 '초산'이라 불린 곳으로 타이베이 시에 가까이 있는 국가공원입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양밍산은 겉보기와는 달리 온천과 지열 활동이 활발한 곳입니다.

 

 

양밍산에서 제일 오래된 온천호텔이 1952년에 창립되었고 일본풍이 많았다고 합니다. 쟝제스(장개석) 총통이 귀빈들을 접대하거나 피서지로 애용하던 양밍 서옥 등 유명한 곳이 이 양밍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중 양밍산 최대 규모라는 티엔라이 스프링 리조트를 찾았습니다. 실내는 한국의 리조트처럼 깔끔했습니다. 

 

 

수영장뿐 아니라 헬스장 등 각종 스포츠 시설 등을 갖추고 있더군요. 무엇보다 20여 가지의 테마가 있는 스파시설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 입습니다. 이곳에는 노천탕이 유명하기 때문에 수영복과 수모를 쓰고 노천탕으로 간답니다.

 

 

탈의실에는 라커룸과 샤워시설이 전부입니다.

 

 

간단히 족욕을 할 수 있는 곳도 보입니다.

 

 

바깥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서 목욕 타월로 몸을 감싼 채 노천탕으로 향합니다.

 

 

희뿌연 물은 아주 미끌미끌한 것이 유황냄새도 많이 납니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싱그러운 대자연 속에서 이렇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이곳 온천의 장점입니다.

 

 

이곳도 역시 가족 단위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는 수영복을 입는 노천탕이 번거로워 실내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바로 이웃한 리조트인데, 이곳의 뷰는 정말 좋더군요.

 

 

실내도 아주 좋습니다.

 

 

마치 해변에 온 듯한 느낌으로 야외 온천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한참을 산책하다 실내탕을 찾았습니다.

 

 

아쉽게도 노천탕과 실내탕을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더군요. 저는 결국 실내탕을 선택.

 

 

실내탕은 바로 카운터 옆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중탕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인기척도 없습니다. 노천탕과는 달리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은가 봅니다.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한국말로 된 안내문이 있습니다.

 

 

탕으로 들어갔더니 50대로 보이는 대만인만 한 분 계시네요. 미소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탕은 정말뿌옇더군요.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회색이었습니다. 유황성분이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물론 유황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근데, 미끌미끌한 게 온천물이 정말 좋더군요.

 

 

잠시 후 대만인이 나가고 나자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 넓은 탕을 결국 혼자 전세 낸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이곳을 혼자 독차지하는 걸로 충분히 보상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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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동해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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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동해의 꽃’

- 바다에 바위꽃이 피었습니다!

 

바다는 분명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아니, 바다는 늘 한결같은데, 인간의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무 날이 넘도록 슬픔과 절망, 간절한 희망으로 지켜보던 바다… 이제는 바다가 빚어낸 자연의 작품을 관조하면서 스스로 시간을 위로할 일이다.


 

경주의 어느 호텔 벽면에 붙은 대형 사진보다 앞서, 이곳의 풍경은 몇몇 사진가들에게 진즉 알려져 있었다. 문무대왕릉에서 울산 가는 31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내려갔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이곳에는 최근에 이름깨나 알려진 주상절리가 있다.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해안 길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읍천항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파도소리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 해안 길에 접어들기 전에 잠시 돌아본 항구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었다.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 그리고 부지런한 어부들이 내서 말리는 생선들,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어선들은 부두 한 곳에 꾸며진 작은 공원이 없었다면 여느 어촌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순박한 풍경이었다.


 

출렁다리도 놓고 나무 데크를 깔아 길을 다듬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때가 겨울이었으니 봄빛 충만한 지금은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번듯한 새 길에 서서 해안의 주상절리에 감탄할 것이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한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산책 중에 만나는 몇몇 초소가 말해주듯 예전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이었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경주 양남면 읍천리에서 하서리 사이 1.7㎞ 해안코스를 말한다.

 

 

양남면 해안에 주둔했던 해병 1사단 읍천 분초가 이곳을 떠난 후 이 기묘한 생김새의 주상절리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상절리 하면 대개 제주 대포동과 갯깍을 먼저 떠올리거나 좀 더 아는 이라면 무등산 서석대나 입석대의 그것, 한탄강의 외진 벼랑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 모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었다면 이곳의 주상절리는 바다에 누워 있다.

 

 

물론 ‘위로 솟는 주상절리’도 있지만 ‘누워 있는 주상절리’와 ‘기울어진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채꼴 모양의 이 특이한 주상절리를, 바다 위에 핀 한 송이 해국을 닮았다 해서 ‘동해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부채꼴 주상절리

 

 

 

 

 

 

 

 

▲▼ 누워 있는 주상절리

 

 

▲▼ 누워 있는 주상절리와 위로 솟는 주상절리

 

 

 

 

 

늘 그렇듯 이곳 바다도 이미 연인들의 차지다. 푸르디푸른 동해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들의 사랑만큼 깊디깊다.

 

 

1000도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냉각되어 주상절리가 생긴 것처럼 그들도 그 뜨거웠던 순간을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냉각시켜 기억할 것이다.

 

 

바닷가 우체통에선 편지를 쓸 수 있다.

 

 

우체통 옆에 비치된 주상절리 전경 엽서에 글을 써 우체통에 넣으면 매달 첫째 주 월요일 감포 우체국 직원이 수거해간단다.

 

 

해파랑길 10코스 11km지점. 해송에 매달린 작은 푯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하염없는 바다를 향해 깊은 숨을 토해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은 2012년 9월 25일,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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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오지암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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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오지암자 가는 길, 연둣빛 산행

 

 

 

음정 마을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산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처음에는 벽소령으로 갈까 했으나 수년 전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영원사로 향했다. 버스가 다니는 종점인 음정 마을에서 영원사까지는 고바우길이다.

 

 

초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이 길은 산을 하나 그대로 오르는 비탈길이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있을까 조바심을 내며 힘겹게 오르기를 한참, 마침내 영원사라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양정 마을에서 만난 노인이 영원사 못 미처 200m 아래쯤 크게 휘어진 곳에 도솔암 가는 산길이 어렴풋이 있다고 하지 않았다면 한참이나 헤맬 뻔했다.

 

 

마침 긴 머리를 단단히 묶은 산꾼을 영원사 앞에서 만나 도솔암 가는 길을 재차 확인했고 그의 말대로 다리를 찾았으나 지나치고 말았다. 분명 이 어디쯤인데 망설이고 있을 무렵 거짓말처럼 산꾼이 눈앞에 다시 나타나 내가 짐작한 그곳이 맞다며 다시 길을 설명해줬다.

 

 

곰이 출현하니 속히 돌아가라는 선뜩한 경고문을 뒤로하고 계곡을 건넜다. 오지 암자로 가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이나 있을까 했던 의구심은 기우였다. 아주 옛날부터 이 산길을 다닌 것처럼 길은 또렷했다.

 

 

온통 연둣빛을 발하는 나무의 색은 가을 단풍만큼이나 황홀했다. 햇살에 비치는 나뭇잎의 핏줄이 선명하다. 푸르거나 검거나 이 두 가지 색으로만 채워진 봄의 숲에 이방의 나무가 보였다.

 

 

자작나무였다. 너무나 하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자작나무가 연둣빛을 뚫고 푸른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자작자작’ 껍질을 만지자 자신의 이름을 어김없이 내뱉는다.

 

 

비탈길이다. 계곡을 서너 차례 건널 때만 해도 평지에 가까웠던 산길이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늘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치 돌이 많은 길은 예전 누군가 애써 놓지 않았다면 분명 이렇게 또렷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숨이 깔딱 넘어갈 즈음 깔딱 고개는 끝이 나고, 수십 그루의 아주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편백나무가 좌우로 열을 지어 있었고, 그 끝으로 대로 만든 사립문이 얼핏 보였다.

 

 

“돌아가시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사립문을 지나 암자로 들어섰다. 해발 1200m가 넘는 이곳에도 봄빛이 완연해 스님이 심은 고추가 텃밭 고랑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암자엔 하늘빛만 가득하다. 스님과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참이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산을 내려왔다. 스님께 인사를 하고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스님이다. 지게를 진 스님의 발길이 바쁘다.

 

 

 

“어디 가시게요.”

“아, 저 아래 누가 물건을 갖다 놓은 모양이오.”

 

그러더니 어느새 앞서간다. 축지법을 쓰는지 상체는 그대로인데, 쓱쓱 발길이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숲길 끝으로 지게만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자작나무를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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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할머니들의 건강한 시골밥상,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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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할머니들의 건강한 시골밥상,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

 

지난해에 잠시 들렀던 비비정 레스토랑을 연휴를 맞아 다시 찾았습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릅 삼례리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가까운 곳에 있는 비비정 정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레스토랑이야 전국 어디에도 있지만 이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비비정 마을에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신문화공간조성사업의 과정으로 음식, 전통가양주, 다과, 공동농작물 생산을 시도했습니다. 마을의 문화적 해석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네 개의 공동창업팀을 발굴해서 사업을 진행했답니다.

 

 

그중의 하나가 비비정 마을 부녀회가 뭉쳐 만든 마을음식문화창업팀입니다. 정도순 대표를 중심으로 60~70대 어머니들이 만든 마을레스토랑입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을 건달할머니라고 한답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식자재를 기본으로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줄여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는 로컬 푸드 방식입니다. 물론 한정식 위주의 식단이지요.

 

이외에도 비비정 마을 청년들이 이끌어가는 작은 양조장에서는 ‘비비락주’라는 건강한 술을 빚습니다. 언덕 위에는 비비낙안이라는 카페도 있습니다.

 

 

 

비비정 레스토랑은 마을 한복판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거나 언덕 위 카페 비비낙안에 주차를 하고 내려가면 됩니다.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엔 빈자리가 없습니다. 10여 분 남짓 기다려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마을신문을 봅니다. 비비정 마을신문은 매월 무료로 배포되는 월간지입니다.

 

 

음식은 뭐 겉으로 보기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마을 어머니들이 늘 해 오신 그런 맛인데요.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식자재에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했거나 가까운 곳에서 조달하는 로컬 푸드라는 것이 장점입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1만 5천 원 상입니다. 1만 2천 원짜리 기본상과는 달리 홍어무침과 꽃게탕이 추가된 차림상입니다.

 

 

맛은 담백합니다. 입맛을 확 사로잡는 강렬한 맛은 분명 아닙니다. 은근하게 씹히는 맛에는 건강함이 넘칩니다.

 

 

살이 잔뜩 오른 조기 살은 부드럽습니다.

 

 

홍어는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없어 마니아들에게는 아쉽겠지만 누구나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한 홍어무침도 좋았습니다.

 

 

김치에 싸먹는 수육도 물론 건강합니다.

 

 

특히 꽃게탕은 속이 꽉 차 있어 국물도 진했지만 겨우 두서너 조각만 넣고 생색내는 여느 꽃게탕과는 달리 푸짐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레스토랑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분리수거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씀씀이가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마을 한 쪽의 한갓진 곳에 있는 레스토랑을 느긋하게 거니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레스토랑 앞에는 등록문화재(삼례구양수장, 제221호)가 있습니다. 삼례양수장이 그것인데요. 이 양수장은 삼례와 익산 지역의 상수원을 목적으로 지어졌답니다.

 

 

차곡차곡 포개어 쌓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창에는 주방도구들을 걸어 놓아 눈길을 끕니다. 양수장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구성이지만 일제강점기 치수 사업의 상황과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레스토랑 옆 밭에는 자두나무 과수원이 있습니다. '추희'라고 불리는 가을자두입니다. 비비정의 명물로 완주군 로컬 푸드 사업단에 납품하기도 한답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함께 작업하여 수익을 창출합니다.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도 있습니다.

 

 

층계를 올라 카페 비비낙안으로 갑니다. 이곳에선 만경강과 일대의 너른 평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야트막한 언덕임에도 사방이 탁 트여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완산 8경의 하나였던 ‘비비낙안’의 풍류가 지금도 전해지는 듯합니다.

 

 

카페 안에서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이곳에서 보내는 봄날의 오후는 느긋합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넘나드는 봄바람, 잔잔한 음악의 선율, 시큼한 차 한 잔… 모든 것이 꿈결 같군요.

 

 

고양이도 나른한 듯, 늘어지게 기지개를 켭니다. 봄날은 또 이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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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고 방송출연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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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고 방송출연했더니…

 

제목처럼 금기라고까지 말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방송에 출연을 했습니다. 그동안 다큐에서도 몇 번 출연 요청이 있었고, 3월쯤엔 <인간극장>에서도 말이 오고가기도 했지만요. 원체 방송하고는 인연이 맞지 않는지라 모두 거절을 했었지요.

 

▲남해군 창선면 단항 마을의 왕후박나무에서 첫 촬영

 

주로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신문을 통해 방송국에서 연락이 자주 왔었습니다. 각종 문의부터 자문, 출연까지… 급기야 저의 연락처를 방송국에는 절대 가르쳐주지 말라고까지 했지요. 메일로 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대부분 답변을 하지 않았고요. 이유는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4월초쯤인 걸로 기억되는데요. 평소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작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왔더군요. 처음에는 촬영 장소와 관련해서 문의를 하는 것 같아 아는 안면에 모른 체 할 수 없어 덥석 물었더니 동료작가가 방송 출연자로 저를 고려하고 있다며 한 번 통화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남해군 창선면 단항 마을의 바지락은 전국에서 손꼽힌다.

 

그러곤 곧장 방송국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었지요. 다행인지 조금 있으면 나올 책 작업도 해야 했고, 며칠 뒤엔 대만 여행도 잡혀 있어 일단 고민을 해 보고 출연 여부를 결정하기고 했습니다.

 

 

대만여행이 끝나고 작가를 만나 출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예능보다는 다큐에 가까웠고, ‘길-골목길’에 대한 프로여서 나름 의미도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촬영일정 등 모든 것을 저에게 맞춰주겠다는 성의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해 죽방렴

 

그래서 4월 15일 첫 방송촬영을 했습니다. 일단은 가벼운 마음으로 남해를 가기로 했습니다. 담당PD, 작가, 카메라 3, 저 이렇게 여섯 명이 출발했습니다. 물론 리포터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빼기로 하고 제가 진행을 하는 것으로 했지요.


처음이라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최대한 평소 여행하던 대로 촬영했습니다. 물론 카메라 감독님이 뉴스파트에서 와서 앵글이 조금 경직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했지만요.

 

▲물건방조어부림

 

이날 남해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물미해안길’을 촬영했습니다. 맨 먼저 단항 마을에 있는 왕후박나무를 찍었는데요. 마침 부두에서 바지락 잡이가 한창이라 자연스럽게 촬영이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창선대교에서 죽방렴을 잠시 구경하고 지족마을에서 멸치쌈밥을 먹었습니다. 독일 마을에서 훤히 보이는 물건방조어부림에서 가장 많은 촬영시간을 할애한 것 같습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미조항에 이르러 촬영을 마쳤습니다.

 

▲물건방조어부림

 

한나절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졌습니다. 그다음 주에 방송이 잡혀 있었습니다. 근데 촬영 다음 날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었지요. 일단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더 큰 비극이 되었고 급기야 방송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5월초쯤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세월호 사건 등으로 담당PD가 바뀌면서 프로그램 일부가 개편이 있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며칠 후에 지난번에 촬영한 것이 방송이 되었고요. 며칠 후 개편이 확정되어 촬영을 못하게 되었다는 말에 안도를 했습니다(사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 촬영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사실 일단 촬영 승낙을 했지만 매주 촬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었습니다(물론 제작진은 저를 배려해서 2주에 한 번으로 몰아서 촬영하겠다고 했지만). 특히 책 작업도 진행 중이었고, 신문 연재도 6월부터 시작될 예정이었거든요. 작가가 말하기를 방송 촬영을 그만두게 되어서 선생님은 무척이나 좋으시죠, 하더군요. 아니라고 했지만… ㅎㅎㅎ

 

 

어쨌든 잘 마무리됐습니다. 한 번만 방송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프로그램의 취지가 좋은 만큼 다음에 더 좋은 기획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출연이었지만 12분 동안 나오는 것이어서 그렇게 짧지만은 않았습니다.

 

▲물건방조어부림

 

▲항도 해변 풍경

 

▲항도 해변 풍경

 

▲미조항의 섬들

 

▲미조항

 

 

 

▲미조항은 국도 3호선과 19호선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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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할머니와 500살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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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할머니와 500살 당산나무

-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에서


 

서암정사에서 이어지는 의중마을 가는 길은 옛날 마을에서 벽송사를 오가던 산길이었다. 아스팔트길이 놓이고 한동안 버려졌던 이 산길은 둘레길이 열리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숲길의 청량함도 좋거니와 소란스런 차량을 피해 계곡 물소리를 멀찌감치 들으며 걷는 이 길은 보물 같은 숲길이다. 벽송사에서 의중마을까지는 2.1km, 서암정사에서는 1.5km 거리에 있다. 평탄한 숲길이어서 마을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산자락에 포실하게 안긴 의중마을 언덕에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그중 한 그루는 무려 나이가 500살이나 되었다. 나무의 높이가 25m, 둘레가 4.5.m에 달한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느릿하게 비탈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강영숙 할머니는 17살 때 백무동 강청마을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고 했다. 할머니의 집은 느티나무에서 바로 내려다보였다. 55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작년 추석 안날에 할아버지를 잃었다. 마을에 둘레길이 열리고 TV에 자주 나왔다는 할머니는 비료부대를 등에 지고 논일을 나가는 중이었다.


 

지금은 둘레꾼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의중마을의 느티나무는 수백 년 동안 마을의 안녕을 지켜왔던 당산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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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 노보살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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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 노보살의 하루

 

전나무 두 그루

널따란 바위 하나

산중의 암자

팔순의 보살은

종일 이곳에 머문다.

 

이곳에선

숲이 보이고

암자가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곳에선

숲도 없고

암자도 없고

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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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풍경 그리운 완주팔경 비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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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팔경 중의 하나, 비비낙안 비비정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에서 마을로 내려갔다. 비비낙안이라는 말이 나온 비비정. 낙조가 일품이라는 정자 비비정은 완산팔경 중의 하나로 예부터 많은 이들이 찾던 곳이다.

 

 

만경강이 휘감아 돌고 멀리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는 이곳의 풍광은 가히 으뜸이다. 정자에 오르면 옛 만경철교가 오른쪽으로 보이고 새로 지은 허연 콘크리트의 철교가 마주하고 있다. 비비정은 1573년(선조 6)에 무인 최영길이 지었다가 1752년(영조 28)에 관찰사 서명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정자는 1998년에 복원됐다.

 

 

우암 송시열이 최영길의 손자 최양의 부탁으로 쓴 비비정기에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정자를 보수한 최영의 효심을 칭찬하고 있다. ‘비록 비비정이라는 이름이 지명에서 온 것이라고 하나 옛날 장비와 악비의 충절과 효심을 본뜬다면 정자는 비록 작을지언정 그 뜻은 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비비정 아래로는 물이 유난히 차갑다 하여 붙여진 ‘한내’가 흐른다. 예전 군산과 부안에서 오는 소금과 젓갈을 실은 배가 쉴 새 없이 오르내리던 곳으로, 지금은 풀이 무성하지만 사오십 년 전만 해도 은빛 모래밭이 햇빛에 빛나던 곳이었다. 한내 하얀 모래밭에 기러기가 내려앉은 한가로운 풍경이 바로 완산팔경 중의 하나인 ‘비비낙안’이다.

 

 

 

 

비비정에서 가까운 삼례읍에는 삼례문화예술촌이 있다. 일제강점기 양곡 수탈의 중심에 있었던 삼례양곡창고가 지역재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삼례문화예술촌 안에는 책 박물관,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문화카페, 책공방북아트센터, 디자인 뮤지엄, 목공소 등의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다. 또한 옛 삼례역의 막사발 미술관도 들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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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서 만난 장승, 정말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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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 죽은 나무 살린 장인

- 경남 합천 황매산 모산재에서

 

아차, 싶었습니다. 처음엔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와 합류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근데,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길은 더 가팔라졌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으슥한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걷던 산길이라 지형은 알고 있어 능선을 오르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사가 심한 된비알이라서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만 죽도록 고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영암사지 서금당 옆 오솔길로 접어들 때만 해도 잠시 후에 만날 등산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청량한 숲길에 흠뻑 젖어 걷다 보니 어느 새 왼쪽 등산로를 까마득히 잊고 말았습니다. 모산재는 악산이라 아래서 솔숲 길을 조금 지나면 곧장 바위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어쩐 일인지 숲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다른 길임을 직감하고 서둘러 반대쪽 등산로를 찾았으나 허사였습니다. 산길은 낭떠러지로 이어졌습니다. 혹시나 해서 절벽 쪽으로 나아갔지만 길은 없었습니다. 다시 되돌아 나와 골짜기 깊숙한 산길을 무작정 올랐습니다.

 

 

그렇게 한참이나 올랐을 때 눈앞에 제단 터가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무속인들이 기도를 올리던 곳입니다. 황포돛대바위에서 보면 이곳은 마치 거대한 마애불이 있을 법한 곳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바위능선 아래에 지붕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감추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이곳은 예전에 산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도 산성의 흔적이 제대로 남아 있습니다. 모산재 정상 인근에는 옛 황매산성 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지만 그곳에는 여염집 담장보다도 더 낮은 성의 흔적이라 대개 '애게!' 하며 반응이 시원찮습니다. 이곳은 그나마 제법 성벽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줍니다. 사실 인근에 있는 악견산, 봉화산에도 옛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숨이 턱에 찰 무렵 가파른 바윗길을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땀이 분수처럼 솟기 시작했지요. 비로소 여느 등산객들이 다니는 능선 길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명당이라는 무지개 터까지 내려가서 천황재를 둘러보고 발길을 돌려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정상 가는 숲길 한쪽에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조각이 있습니다. 나무에 그대로 새겨진 장승 조각입니다. 물론 산 나무는 아닙니다. 죽은 소나무에 장인이 새긴 것입니다. 예전에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더니 이 조각을 새긴 분이 자신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강명규 씨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방송된 적도 있었답니다. 이 산 저 산 다니며 죽은 나무에 웃는 얼굴을 조각한 지 십수 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와서 보니 자신들의 사진과 작업 과정을 찍은 사진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아주 행복해 보이는 부부였습니다.

 

 

깊은 산중에서 이렇게 느닷없이 조각을 보는 건 산행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죽은 나무를 살린 장인의 손길이 고맙기만 합니다.

 

 

해발 767m. 드디어 모산재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도 장승 조각은 있습니다. 벼랑 끝 죽은 소나무 두 그루에 새겨져 있습니다.

 

 

방실방실 웃는 모습에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도 잠시, 황포돛대의 멋진 장관을 보기 위해 벼랑 끝 바위에 섰을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담배꽁초 때문이었습니다.

 

 

정상부에서 조금 벗어난 후미진 곳이어서 그런지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렇게 마구 버리는 건 몰염치의 극치입니다. 모산재가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바위와 나무 틈에선 먹다 버린 쓰레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찡그리다 모산재의 수려한 풍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황포돛대바위의 멋진 풍광입니다.

 

 

날씨가 흐려서 아쉽지만 가을이면 산 아래 푸른 호수와 황금빛으로 물든 다랑이논의 풍경이 멋진 곳입니다.

 

 

여인 하나가 황포돛대바위를 밀고 있습니다. 흔들바위라고 여긴 게지요.

 

 

바위 능선을 따라 하산하면서 건너편으로 바라보는 모산재의 풍경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합니다.

 

 

능선 곳곳에서 가지가 잘린 소나무를 목격합니다. 몇 해 전에 합천군 관계자와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모산재의 소나무를 손질해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정원수 손질하듯 말이죠. 하도 어이가 없어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바위산에 자라는 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거늘 굳이 인간의 손이 미쳐야 된다는 발상 자체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안목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세상에 도움이 됩니다.

 

 

하여튼, 이날 세 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쳤습니다. 고향 산이라 그런지 어느 산보다 애정이 많은 황매산과 모산재입니다. 모든 곳에서 그러하지만 아니 온 듯 다녀가는 것, 우리가 죽은 후에 후손들이 잘 물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산을 올라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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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법, 블로그 8년 책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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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법, 블로그 8년 책이 나왔습니다!

 

2007년 초겨울쯤으로 기억되네요. Daum에 첫 블로그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 해인 2008년, 블로그에 입문한지 4개월 만에 베스트블로거로 뽑혀 황금펜촉을 달았고요. 그 후 Tistory로 둥지를 옮겨 6년 연속 우수블로거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특별히 잘했다기보다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한 우물을 묵묵히 팠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한 번씩 책 출간 제의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아직은 아니다, 라는 생각에 거절을 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여행서와는 다른 나만의 여행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12년부터 하나의 주제를 잡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매주 주말이면 길 위에 섰고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와 블로그에 연재를 했습니다. 다시 6개월 동안 길 위에서 자료를 보충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저만의 ‘남도여행법’이 완성됐습니다.

 

이 책을 여는 순간, 이미 당신만의 ‘남도여행법’이 시작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여행은 '타임 슬립'의 과정이다. 여행은 단순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옮겨가는 여정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 책은 인터넷서점과 서울, 일부 지역(예, 창원 교보)에선 지금 바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께나 다음 주초쯤이면 전국의 지역 서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답니다. 북콘서트는 6월 27일(금) 7시쯤에 있을 예정입니다. 여행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금은 색다른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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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남도여행법, 북콘서트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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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남도여행법》, 북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조금은 색다른 공간에서 여러분들과 함께할 작은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행사는 1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양하면서 재밌는 문화행사가 있으니 안 오면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50분 정도 모실 생각입니다. 행사장에 앉을 수 있는 의자 수가 50석 정도입니다.

그리고 간단한 다과도 거기에 맞추어 준비할 생각입니다.

참가하실 분은 아래에 댓글을 남겨주시거나 페이스북 이벤트(클릭)에 참석 여부를 밝히시면 되겠습니다.

 

* 봉투와 화환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책값(18,000원)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일시 2014년 6월 27일(금) 저녁 7시

장소 경전선 신진주역(경남 진주시 가좌동)

 

뒤풀이도 있을 예정이니 차와 술이 들어갈 곳은 비워두고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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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해장국집 앞 골목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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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해장국집 앞 골목길 풍경

여행은 ‘그곳’이 아닌 ‘여기’입니다. 여행자는 낯선 곳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생활자이기도 합니다.

남원에 춘향제 촬영 갔다가 허름한 해장국집 앞에서 2시간 남짓 거리 풍경을 찍었습니다.

딱히 볼거리도 없는, 여느 동네와 비슷한 거리였지만 여행자에게는 이런 일상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먼저 해장국집 최의웅 사장님의 사진입니다.

카메라를 계속 의식해서 한참 후 사진 찍는다는 걸 잊게 하고서야 자연스런 모습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건 사장님의 연세가 일흔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길거리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오전 내내 죽치고 앉아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담았습니다.

 

 

먼저, 여행길에 함께 했던 블로거 보라미랑 님과 온누리 님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친해 보이죠. 얼굴이 붉은 게 밤새 좋은 무언가를 드셨나 봅니다.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와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가 나란히 지나갑니다.

 

 

축제장으로 가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 이때 말이죠.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갓을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십니다.

 

 

혹시 행사 때문에 분장을 했나 했는데,

갓 안을 자세히 보니 실제 상투를 틀고 망건을 썼습니다.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몇 컷을 더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자전거 앞바구니에 상모와 사물놀이 도구를 실은 한복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갑니다.

 

 

카메라를 든 할아버지도요.

 

 

아침 일찍 시장에서 산 무우 몇 뿌리를 자전거 바구니에 그득 실은 아저씨도 지나칩니다.

 

 

길거리에 놓인 화분 너머로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 둘이 지나가갑니다.

식당을 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늘씬한 아가씨들이었지만 야무진 인상이었습니다.

나중에 축제장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그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두 분의 모습이 퍽이나 정겨웠습니다.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은 거리의 아침을 더욱 상쾌하게 했습니다.

 

 

갑자기 거리가 환해집니다.

'깔깔깔 호호호' 금방이라도 자지러질 듯 연신 웃어대는 쾌활한 아가씨들이었습니다.

웃음이 예쁜 세 아가씨였는데, 두 아가씨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힘겹게 걷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흔쾌히 촬영을 허락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작은 소도시다 보니 남원의 거리에선 모두가 이웃인 모양입니다.

반갑게 주고받는 아침인사에 여행자도 이미 이곳의 주민이 된 듯했습니다.

 

 

자전거를 탄 풍경이 이곳에선 아주 흔한데요.

아가씨는 이 분이 유일했습니다.

 

 

2시간 남짓 지나자 축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남원은 온통 축제 중이었습니다.

 

 


 

 

저의 신간 《남도여행법》이 나왔습니다. 다음의 온라인 서점과 전국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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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의 순간들, 남도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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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의 순간들, 남도여행법

- 여행의 방법을 느리게, 더 느리게 《남도여행법》

 

여행의 진정함은 만남에 있다. 특히 사람과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더 강하다. 이 느린 여행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얼마나 깊은지 글을 읽다 혹은 사진을 보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어디를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그리고 여행을 통해 무엇을 만날 것인가.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여행하는 저자는 고백한다.

 

여행은 '타임 슬립'의 과정이다. 여행은 단순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로 옮겨가는 여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 경전선을 타고 남도를 여행해 보자. 때로는 큰 역에 내려서, 때로는 작은 역에 내려서 천천히 역사를, 역이 있는 마을을, 그리고 조금 더 먼 마을을 찾아가보자. 그 길에 서는 순간, 이미 당신만의 ‘남도여행법’이 시작될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반기는 따뜻한 만남들이 그대들을 기다릴 것이다.

 

《남도여행법》 책에 실린 여행의 순간들입니다.

 

 

 

“호텔과 바다 사이의 칙칙한 도로를 따라 아주머니 한 분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손수레를 끌며 내딛는 발걸음에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행자의 한낱 푸념은 삶이라는 깊은 생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풍경 탓을 접고 저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 마산어시장에서”

 

 

 

 

“절 아랫마을까지 내처 걸었다.

햇살이 따가웠다. - 다솔사에서”

 

 

 

“한산사 산신각 댓돌에 앉아 풍경소리를 들어보라. 악양 너른 들판과 능선물결, 굽이치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풍경소리에 깊이 침잠해보라. - 평사리에서”

 

 

 

“먼지 수북이 쌓인 그늘진 마루 대신 마당 가운데 놓인 댓돌에 앉았다. 수선화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노랗다. - 망덕포구에서”

 

 

 

“장터 여기저기서 방송국에서 나왔냐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남도의 작은 시골장에서 볼 수 있는 순박한 풍경들이다. 비록 장은 파했지만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남도의 봄날 오후였다. - 조성오일장에서”

 

 

 

“해가 뉘엿뉘엿 역사 너머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나 예쁜 능주역. 난 이 작은 시골역의 유일한 여행자이자 마지막 승객이었다. - 능주역에서”

 

 

 

“이 역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와 누군가 톱밥을 던져 넣었을 녹슨 난로와 의자 하나가 하염없었다. 역을 떠나야 했다. - 남평역에서”

 

 

“뒤쪽 언덕에는 장독대가 있다. 순매원에서도 한갓진 이곳은 찾는 이가 없어 장독들이 봄볕을 마음껏 쬐고 있었다. 늘 봐도 장독대와 매화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들이다. - 순매원에서”

 

 

저의 신간 《남도여행법》이 나왔습니다. 다음의 온라인 서점과 전국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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